Scissor Arch

학문의 분야를 억지로 나누려고 하는 것처럼 무식한 시도는 없다. 건축가 꼬르뷔지에는 건물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했다. 이 말은 다소 은유적 표현인데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도 틀린말은 아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집이 마치 기계와도 같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준 큰 변화다. 건축과 그 내부에서 설치된 기기를 보면 살기위한 기계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언제인가 집에 동력을 달아서 움직이게 하면 꼬르뷔지에는 정확히 미래를 예측한 것이 된다.

그림에 있는 전개 가능한 구조물에 대한 관심은 건축분야라기 보다는 기계를 설계한다고 하는 것이 더 실감이 난다. 분야를 구분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대학에서는 학과를 분리하지 않고 공학과로 묶어 놓고 있다. 각자 공학을 하는데 분야가 다를 뿐이다.

건축분야에서 디자인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하지만 공학을 바탕으로 하는 건축에 대한 고찰이 꼭 필요한 때가 되었다. 공학기반의 설계를 통해서 건축이 정말 살기위한 기계로 재탄생한다면 우리는 건축에 대한 또 다른 미래를 꿈꿀수 있게 된다.

구조는 기계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